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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21] 점선뎐

[2023-12-26, 11:46:35] 상하이저널
김점선 | 시작 | 2009년 3월
김점선 | 시작 | 2009년 3월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장영희' 작가의 '다시 봄'이라는 책을 읽을 때였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그림들이 어찌나 강렬한지 책을 읽는 내내 그 그림에 강렬히 사로잡혔었다. 그렇게 알게 된 이름 석자 "김 점 선" - 혼자 상상을 했었다. 개명을 한 이름인가, 화가의 이름이 점선이라니 이 얼마나 운명적인 이름인가 싶었다. 그러다 희망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여해서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한 말로 처음에는 많이 놀라고 실망했다. 문체가 거칠기 이를 데 없고, 어찌나 중구난방인지 내가 평론가는 아니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가 책에서 마구마구 드러났다. 몇 페이지를 참고 읽어 넘기니 이 작가의 어마어마한 괴짜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 이래서 이 작가의 그림이 그리도 드러나는구나, 이리도 뚜렷하구나, 그녀의 예술이 너무나 진한 빛깔을 자아내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사물을 독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당당함과 용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책을 엄청 많이 읽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많은 책을 원서 그대로 읽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체라고 느껴진 게 아닐까 싶었다.
 

햇살이 내내 들이치는 밭보다 일부러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모를 공간에 채송화 씨를 뿌리고 진한 색의 채송화를 만나는 그녀, 남편과 1시간을 넘게 말싸움을 하다가 소변이 마려웠는데 화장실을 가면 지는 것이라 느껴져서 그 자리에서 바지에 싸면서 싸웠다는 그녀, 피난민촌에서 살아본 그녀 , 태풍이 불어 가로수가 뽑혀 나가도 학교를 가서  전교생 중 학교를 온 3명의 아이였던 그녀, 여행을 가지 않고 여행 대신 머리속을 정리하는 독서를 선택하는 생활 습관을 가진 그녀까지 너무 너무 일반적이지 않은 그녀를 책으로 만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냈다.

책을 사랑함에 있어서, 읽어냄에 있어서 내가 감히 들이댈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는 그녀를 잠시나마 의아해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는 자들은 이미 천 년 전에 죽은 다른 민족의 조상에서까지 은총을 받아들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비록 인류 문명의 오지에서 태어난 약소국 국민이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않다고, 몸은 중요 무대에 서있지 않지만 머리만은 지구의 중심에서 숨 쉰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멋져지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나와 생각이 비슷해서 놀랐다.
 

만난 적은 없으나, 그녀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도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고, 그 옛날 장발 단속이라는 것이 있던 시절에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장발 단속에 자주 걸리곤 했다 한다. 춤추러 가면 여자들이 다가오고 말이다. "형님 존경합니다"라는 말도 자주 듣곤 했다고 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 목표는 " 전혀 겁탈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아주 강한 여자로 자기 세계를 갖고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남기”였다는 것이다. 참 새롭다.

자연사할 때까지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기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여기저기 상도 많이 타고 아주 유명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나 보다. 단 한 번도 한국 현대 미술을 지배하던 단체전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철저한 왕따이기에 자신만의 그림 세계가 유지되는 건 아닐지...

김점선은 암에 걸렸다. 그런 그녀는 암이 축복이라 한다. 늘 늘어져서 일상 속에서 권태를 느끼던 인간에게 번쩍하고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꽂은 것이다. 일상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조용히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을 즐긴다. 암 환자라는 특별 대우를 즐긴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몸을 바라보는 기회를 즐긴다.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짐을 즐긴다. 그런 그녀가 멋지다. 보통 사람이 살 수 없는 삶을 살아주는 화가가 아닐까 싶다. 책으로 만나니 반가웠다. 

나은수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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