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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95]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2023-06-06, 10:29:34] 상하이저널
장명숙 | 김영사 | 2021년 8월
장명숙 | 김영사 | 2021년 8월
밀라논나 이야기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 누리게 하시며 
고통을 평화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시옵소서.”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뭘 하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내 어머니의 생활 신조이기도 하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강요하지 않아도 그리할 텐데,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것에 등 떠밀려 일찌감치 기가 질려버렸다. 방송국 견학까지 다녀온 피곤한 저녁에도 학원을 다녀와야 했고, 치고 싶지 않은 피아노 연습을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었기에 늦은 저녁 어두운 식탁 밑에서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덜덜 떨면서도 연습은 계속돼야 했다. 내가 정작 다니고 싶었던 학원은 따로 있었지만, 말도 못 꺼내 봤고, 끙끙 앓으며 꽤 오랜 시간을 그런 식으로 견뎠다. 

밀라논나의 생각을 읽어보면 ‘나이 참 잘 들었다! 참 젊다. 참 용기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은 있지만 실천이 안 되고, 맘 돌리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어려운 잘라내기를 참 칼같이 잘한다. 그래서 지혜롭다. 측은지심 자연을 닮은 할미 같기도 하고, 편한 엄마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친구의 얼굴과도 닮았다. 오래 쓰고, 잘 관리해 나눠주는 지혜와 보람을 안다. 아미치(Amichi 이태리어로 친구들, 구독자들)에게 온정을 다한 고민 상담이나 방심했을 때 훅 들어오는 쓴소리도 꽤 과감하다. 이런 점들이 요새 친구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 같다. 

초∙중등 시절 옷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수많은 옷들의 스케치로 연습장을 채워갔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모님께 발각되면 큰일 날 일이었다. 헐렁했던 교복 치마의 훅이 끝내는 터지며 지퍼의 끝심으로 치마 단도리를 해야 했을 시절, 매일 갱지에 영어단어와 수학 문제를 풀며 꽉꽉 채워 제출하는 것이 야자의 목적이 되어갔다. 가부장적인 그 시대에 밀라논나는 기어코 꿈의 실현을 위해 이탈리아 유학 1호로 도전했고, 한국 패션계 발전을 위한 물꼬를 터냈다. 아내이며 딸, 엄마이자 며느리, 직장인의 본분을 다하려고 시간을 쪼개 애쓰며 살았다는 분이 노년에 보내는 메시지는 참 따뜻하다. 

이 책을 읽고, 또 유튜브를 보면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던 자책 많은 인생일지라도 귀하게 대접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타고난 지 맥대로 놀고, 자신의 색을 찾아 인생을 축제처럼 즐기라는 말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아이들 챙겨 먹이고 깔끔하게 청소한 뒤, 화분에 물까지 주고 나서 햇살 가운데 앉으면, 가지런히 정리하고, 바지런히 움직이며 반려 식물에 앉은 먼지까지 정성 들여 닦고 햇빛 멍을 즐긴다는 그녀의 텅 빈 충만을 알 것도 같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그녀가 제안했던 사막의 하늘과 모래색을 매치한 착장에 나를 위한 탄생석 목걸이를 하고 살랑살랑 외출하고 싶다. 이제 나에게 패션을 논한다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듯 흔들리는 일이지만 말이다. 봄바람에 하늘하늘 흩어져 간 꽃자리 위로 여린 잎들이 기분 좋은 초록빛을 뿜으며 힘차게 자라고 있다. 

힘냅시다! 당신은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가능성 있는 오리이고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니까요!

최승진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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