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책읽는 상하이 132] 말, 혹은 살로 맺은 동행의 풍경 <동무와 연인>

[2022-03-04, 11:18:29] 상하이저널
김영민 | 한겨레출판사 | 2008.03.28
김영민 | 한겨레출판사 | 2008.03.28

동행이라는 말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말이 또 있을까? 친구든, 연인이든, 또 다른 관계든 동행의 길이 빛날수록 돌아서는 순간은 더욱 날이 선 비수가 되는 법.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만큼 신뢰도 줄어든다. 자연스레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역시 가물어간다. 

김영민은 책에서 공통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동지’나 사적 우연성으로 뭉친 친구와는 다른 “서로 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함께 걷는 동무(同無)”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은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이 아닐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범인(凡人)들은 그 서늘함의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동무로도 연인으로도 머물기 어렵다. 하지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사귐에서 특별한 것은 서로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과 그녀의 ‘귀(동무)’였다. 뜨거운 연애의 순간이 지난 후 말을 가운데에 두는 ‘지적 반려’로 관계를 이은 것이다. 

그렇다면 말의 이어짐은 쉬운 것인가. 어쩌면 장미꽃을 내미는 에로스보다 어려운 것이 말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진실과 존경의 산을, 존중과 인내의 파도를 넘어야 하니까 말이다. 가식적 긍정이 아닌 진심 어린 대화. 

이에 다정한 듯 서늘한 이덕무와 박제가 같은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는 물론 재기(才氣)마저 갉아먹는 어긋난 관계들도 소개된다. 한 집안의 두 천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어머니 요한나와 쇼펜하우어처럼 호의로 포장된 지옥을 살거나, 피카소의 에고이즘 속에 죽음 또는 정신이상으로 예술적 영감의 불쏘시개가 되어 바스라진 여인들의 피 역시 씁쓸하게 구경할 수밖에 없다. 끝도 없는 이야기로 새벽을 맞아도 좋을 동무(同無)가 참으로 그리운 밤이다.
*이드거니: 충분한 분량으로 만족스러운 모양.

ksjung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책읽는 상하이 131]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2022.02.23
    처음에 책 제목이 ‘舌戰’이 아니라 ‘雪戰’이라 왜 이렇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 불교사의 두 거목 성철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가 말다툼이 아닌 눈싸..
  • [책소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2022.02.11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첫 장편 소설로, 1891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영국의 순진하고 아름다운...
  • [책읽는 상하이 130]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hot 2022.02.10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이 책은 조선을 연 이성계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당대의 중요 사항과 업적을 설 선생님의 어투로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학생들에게도...
  • [책읽는 상하이 129]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22.01.31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의..
  • [책읽는 상하이 128] 적극적 사고 방식 2022.01.27
    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방황하고 헤매던 여고생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다. 단숨에 교보문고로 달려가 첫 페이지 프롤로그를 읽고 가슴 벅찬 희망을 품은..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농부산천, ‘정제수’ 출시 소식에 소..
  2. 中 스마트폰 시장 회복 신호 ‘뚜렷’..
  3. 중국인도 즐겨먹던 ‘이 약’ 효과 없..
  4. 광저우자동차, 화웨이 자율주행 기술..
  5. 중국판 챗GPT ‘키미(Kimi)’..
  6. 상하이 오피스 공실률 20년만 ‘최고..
  7. 현대차·기아, 바이두와 MOU 체결…..
  8. [인터뷰] “재외선거 투표 참여 어려..
  9. 中 상하이 등 20개 도시서 ‘온라인..
  10. 상하이 남포대교 한복판서 전기차 ‘활..

경제

  1. 농부산천, ‘정제수’ 출시 소식에 소..
  2. 中 스마트폰 시장 회복 신호 ‘뚜렷’..
  3. 광저우자동차, 화웨이 자율주행 기술..
  4. 상하이 오피스 공실률 20년만 ‘최고..
  5. 현대차·기아, 바이두와 MOU 체결…..
  6. 테슬라, 중국판 완전자율주행에 바이두..
  7. 화웨이·애플, 같은 날 신제품 발표회..
  8. 中 4대 도시 상주인구, 다시 ‘증가..
  9. 中 4대 항공사 모두 국산 여객기 C..
  10. 中 부동산 정책 완화 기대감에 관련주..

사회

  1. 중국인도 즐겨먹던 ‘이 약’ 효과 없..
  2. [인터뷰] “재외선거 투표 참여 어려..
  3. 中 상하이 등 20개 도시서 ‘온라인..
  4. 상하이 남포대교 한복판서 전기차 ‘활..
  5. 일찍 예매하면 손해? 노동절 연휴 항..
  6. 上海 뒷좌석 안전띠 착용 단속 강화
  7. 上海 노동절 연휴 날씨는 ‘흐림’…..

문화

  1. [책읽는 상하이 238] 평범한 결혼..
  2. [책읽는 상하이 237] 멀고도 가까..
  3. 희망도서관 2024년 5월의 새 책

오피니언

  1. [무역협회] 中 전자상거래, 글로벌..
  2. [안나의 상하이 이야기 10] 큰 장..
  3. [상하이의 사랑법 12] 손끝만 닿아..
  4. [산행일지 2] “신선놀음이 따로 없..
  5. [무역협회] 中 1분기 경제지표, '..
  6. [허스토리 in 상하이] 가고 멈춤
  7. [허스토리 in 상하이] 사월
  8. [중국 세무회계 칼럼] A씨가 올해..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