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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옥란꽃 필 때

[2023-03-18, 06:47:48] 상하이저널
해마다 춘삼월이면 어김없이 찾는 곳, 바로 민항구 우중루와 항중루(吴中路航中路)교차점에 자리잡은 민항문화공원이다. 이맘 때 꼭 이 공원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아름답고 우아한 봄아씨 옥란꽃 마중을 위해서다.

1984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화(市花) 붐이 일었고 상하이는 1986년 10월,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시화 선정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고 한다. 후선으로 뽑힌 옥란꽃, 월계화, 봉선화, 해당화, 두견화, 석류화 등 많은 꽃들과의 겨룸에서 옥란꽃이 단연 일등을 차지했는데 옥란꽃 중에서도 흰색꽃이 분발, 진취, 향상의 양상을 갖춘 매력으로 일약 상하이의 시화로 선정됐다.
 
상하이식물원, 공청삼림공원, 쭈바이츠(醉白池)등 여러 공원에서도 옥란꽃을 구경할 수 있지만 민항문화공원은 상하이의 유일무이 옥란꽃 테마공원이다. 4성급이지만 무료인데다 지상 지하 교통이 사통발달하고 주민 거주지와 가까이에 넓은 부지의 아름답고 멋진 공간을 갖고 있어 시민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공원 동서 입구에 각각 두줄 나란히 줄지은 분홍빛 옥란꽃과 공원 여기저기 적당히 자리잡은 1500여 그루의 옥란꽃 나무들이 3월 초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약 한주일 후 일제히 만개하면 그 아름다움이 그야말로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의 장관을 이룬다. 옥란꽃은 참으로 청순하고 아름답고 활력 넘치는 꽃이다. 자기의 예쁨에 하도 자신만만해서일까, 거연한 나무에 푸른 잎의 배동도 없이 배짱 두둑이 하늘을 향해 한 잎 두 잎 여유작작 꽃잎을 펼치고 열흘을 넘기기 바쁘게 훌쩍 자취를 감춰버린다. 귀한 건 적고 적은 건 귀하고 값지다는 걸 알아낸 옥란꽃이 자기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절대 아끼는 깜찍하고 지혜로운 술책이리라.

순백의 신성함이 돋보이는 백옥란과 발랄하면서도 우아함이 넘치는 분홍빛 옥란꽃 가운데서 언제나 성미 급한 흰색의 옥란이 먼저 봉오리를 터치고 그 뒤를 이어서 분홍색의 옥란이 서서히 꽃가마의 문을 열어젖힌다. 잠깐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자칫 한해를 기다려서야 볼 수 있는 옥란꽃, 춘삼월 이 시절에는 꽃 구경을 서두르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펼쳐진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텐트,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과 짙푸르러가는 잔디밭, 그리고 옥란꽃과 텐트 사이를 맴도는 싱그러운 바람, 따사로운 봄 볕에 온 몸을 통째로 내맡기고 마음껏 꽃 향기에, 봄 내음에 취해버리는 사람들, 이들이 서로 어울리고 한데 엉켜 봄날의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문화공원 옥란꽃 필 때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올해 옥란꽃 구경은 둘째 손녀와 동행했다. 둘째 손녀 윤지는 명랑하고 영리하고 예쁜데다 배려심 또한 남달리 깊어서 저물어 가는 내 황혼 인생의 중요한 친구 한명이다.

코로나 때문에 꼭 3년 동안 면목을 잊었던 옥란꽃에 혹해 정신줄을 놓는 사이 손녀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이리저리 둘러 보니 손녀가 모래놀이터로 쫑그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일곱 살 개구쟁이가 꽃 구경에는 뒷전이고 모래파기에 정신을 쏟을 계획이었다. 모래파기에 에네지를 다 쏟아내기 전에 사진 몇 장만 찍어 달라고 금방 떼쟁이로 돌변한 손녀에게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네가 얼마나 착한 애냐, 네가 얼마나 로로(姥姥, 외할머니)와 친하냐, 사진만 찍어주면 모래파기를 언제까지라도 놀게 해줄께, 로로의 굳은 다짐을 확인 받고서야 손녀가 핸드폰을 넘겨 받았다. 일단 폰을 잡자 대뜸 다시 "배려심 깊은" 친구로 변해 제법 진지하게 로로를 요리조리 견주더니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얻어 낸 옥란꽃 배경의 사진 몇 컷, 시끄러워 하면서도 열심히 작업하는 것 같더니 꽤 어물쩍한 옥란꽃 구경 증명 사진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손녀의 모래파기가 긴 긴 시간 계속되었다. 내 옥란꽃 구경은 그렇게 사진 몇 장 찍기로 끝나고, 참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손녀의 모래파기놀이로 둔갑해버린 오늘의 옥란꽃 구경, 모래를 파며 뚜지며 동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손녀를 바라보는 로로의 즐거움, 이게 바로 세상 별미 중의 별미요, 인생 사는 재미 중의 재미니, 태양산 아래서 손녀를 지켜보는 내 마음에 달달한 즐거움이 차고 넘친다. 행복은 바로 이렇게 내 가까이에 있다.

올해의 옥란꽃 구경, 아마도 다음 어느 날 다시 출두해야 할 것 같다.

옥란꽃이 만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방미선(前 연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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