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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모든 교과목의 중심은 읽기와 쓰기

[2012-08-15, 17:56:35] 상하이저널
 방학 중 저는 literary circle 수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독서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읽기/쓰기 활동에 참여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으로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읽기와 쓰기라는 활동을 할 때 아이들의 머리 속에 일어나는 놀라운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었던 내용은 사소한 어휘까지 기억하는 반면, 전체 줄거리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는 놓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전체 줄거리를 이미지나 영화처럼 통째로 이해하면서도 세부 내용,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사건 중심으로 내용을 기억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입 하여 줄거리를 바라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읽은 내용이 사람들에게 마치 지문 찍기처럼 다르게 기억되고 각인되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런 다양한 아이들에게 읽기 내용을 똑같이 ‘이해시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는 강제로 시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독자들에게 자기 만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독서를 지도하고 책 읽기를 도와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해력을 측정하기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자신이 배운 바를 얼마나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가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이가 책을 통해 알게 된, 배우게 된 바를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글의 서술자(narrator)를 바꿔 줄거리를 다시 쓰는 글쓰기 활동을 해 보면서 글의 서술방식을 이해해 봅니다.

마찬가지로 확실한 대조(foil)를 이루는 두 인물의 특징을 비교하는 활동을 해 보며. 글의 구성적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된 글쓰기 장치(literary device)를 찾아보고 자기 언어로 직접 이를 분석해봅니다. 이처럼 글의 이해력의 너비와 깊이는 단지 줄거리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아닌 글의 이해를 여러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확대되고 심화됩니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할 때마다 대단원의 과제로 수업시간에 다룬 책에서 다뤄진 여러 주제 중 한 가지를 골라 에세이(literature analysis essay)를 작성합니다.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자료들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보통 수업 중에 토론된 주제와 입장을 가지고 글을 쓰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책에 나온 내용만을 근거로 해서 입장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더 정성껏 들여다보게 되고, 행간의 의미를 좀 더 고민하게 됩니다. 어렵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투정하긴 하지만 서툴게나마 힘들게 완성된 아이들의 글을 보면 도리어 아이들의 생각의 깊이에 제가 도리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사람은 기대 받는 만큼 성장한다고 하던 가요. 물론 어떤 아이들은 남들의 이야기나 선생님과 같은 권위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원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남들의 해석이 자기 생각보다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동적인 태도의 원인에는 자신의 생각이 가치 있는 것으로 존중 받았던 경험이 없었던 것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편견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인 말까지 다 존중해주고 받아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도리어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아이를 동등한 대화상대로 대우해주고, 이끌어줄 부분은 강제로 이끄는 게 아니라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어 나중에라도 같은 문제를 만날 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주자는 것이지요.

교육학자 Vicki Phillips와 Carina Wong은 미국 교과구성에 대한 논문에서, 읽기와 쓰기가 모든 과목을 붙잡아주는 척추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Authentic literacy is the 'spine' that holds everything together in all subject areas.” (Phillips and Wong, 2010) 현대 사회일수록 더 많은 읽기와 수준 높은 통합형 쓰기가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그만큼 지금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에게도 또 다른 고민과 숙제가 요구됩니다. 프로그램은 끝나 마음이 개운하기보다 더 많은 고민과 책임감으로 어깨가 한 층 묵직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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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서울 Cardiff Language School에서 3년간 근무했다. School for International Training에서의 영어교육학 석사취득, Colegio Real de Minas (Mexico)에서 근무하며 다문화와 영어교육에 대한 평생 화두를 얻었다. 현재 SETI에서 6년째 TOEFL, SAT, Literature 강의를 맡고 있다.
arimaha@naver.com    [김아림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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