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바쁜 청년(?) 아들과 모처럼 오붓하게 지난번 명절에 부쳐놓은 녹두전을 먹고 있었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지난 명절 한국 친가에서 오랫만에 명절을 보낸 생각이 났나 보다.
"엄마, 어릴 때 우리 친가에 가면 전도 부치고 식혜며 갖가지 음식들이 풍성해서 하루종일 먹고 뛰어 놀았잖아요. 오후엔 손님들이 계속 오셔서 엄마는 종일 상을 차리시고… 그런데 이젠 음식도 조금 하시고 찾아오시는 손님도 없는 것 같아 명절이 오히려 썰렁하고 그랬어요"
이렇게 말하는 아들의 얼굴에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맘이 무거웠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지도 벌써 10년이 훨씬 지났다. 아이들도 이미 장성한 청년이 되어 나도 이렇게 잠깐이라도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귀하고 즐겁게 느껴지니 세월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진다.
"맞아, 조부모님께서 어찌나 너희들을 사랑하시고 위해주셨는지 어릴 때 그곳은 어린이 천국 같았지. 너희들과 고만고만한 작은집 동생들 다섯 손주 귀찮다 하지 않으시고 데리고 다니시고 놀아주시고 하셨는데. 세월이 흘러 그때 인사하러 오신 분들도 이제는 인사 받을 연세들이 되셨으니,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이제 인사 받을 나이가 되었구나."
다행히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이 탓인가? 많은 사람들이 요즘은 일찍 해외 생활을 하거나 바쁜 생활 속에서 잠시 시간이 있으면 여행이나 자기 관리에 순위를 두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인생의 이런 관계의 중요한 배움을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사회에서도 구별과 차별이 혼동되고 가정에서도 질서가 혼동되어 많은 부분들의 중심이 아이들에게로 가는걸 볼 때는 안타깝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런 건 글로 지식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학습되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조급증이 앞선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해 하며 많은 관심과 시간을 둔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10년 지기인 연우 엄마는 참 지혜로운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삼촌 숙모가 되어주고 또 두 꼬맹이들에게 우린 아찌네 집이 되어 자연스럽게 방문하고 인사하고 서로 챙기며 이곳에서 놓치기 쉬운 살아 가는 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자라게 한다. 명절이나 특별한 때 함께 만두나 송편을 빚고 틀리지 않는다면 조금 자기들과 맞지 않아도 우리의 의견을 받아드리니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관계 속에서 어른을 알아보고 질서를 익혀가는 모습이다.
이번 설에도 연우네 그리고 또 새롭게 알게 된 가족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과 함께 덕담도 하고 둘러앉아 만두국을 먹고 윳놀이로 흥을 돋구니 웃음소리가 즐거움을 더한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가고 어른을 공경하고 서로 도와가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 갈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젊어서는 어른을 섬기는 것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어른의 위치도 책임과 여러 가지 부담들이 만만 치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더욱 겸허해 지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것에 아쉬움만 갖지 말고 지금 이곳에서 서로 사랑하고 더불어 더 많이 더 진솔하게 나누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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