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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 2021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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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
몇 년 전 만난 책인데 이제야 다 읽었다. 제목부터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단지 표지에 기차와 철길, 그리고 나무들 그 안에 모자와 안경을 쓴 저자의 그림만이 솔깃한 두꺼운 책이었다. 그런데 정독을 하기 전에 살짝살짝 군데군데를 읽어 보고는 흥분했다. 어쩜,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작가가 누구라고? 하면서 작가 이름을 다시 찾아 읽고, “에릭 와이너!”, “에릭 와이너야!”하고 이름을 머리에 새기려고 노력하며 읽었다.
그렇게 흥미 가득했던 책이었는데 서평을 쓰려고 또 씨름하다 보니 책 내용은 이내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읽다가 자꾸만 고꾸라지곤 했다. 서평의 의무감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지 못하고 접어버렸을 것을 서평 덕분에 끝까지 읽기를 해내어 뿌듯하다. 509페이지라니…. 에릭 와이너의 글솜씨는 독특하고 유머도 있고 흥미로웠다.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철학 이야기들을 파고 파고 또 팔 수 있었는지 존경스럽다. 그도 어릴 때부터 우울과 함께였다니! 그럼에도 지혜를 습득하려고 공부하고 궁리하고 알아가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니, 희망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에릭와이너는 14 명의 철학자를 신중하게 뽑아 각기 다른 맛의 지혜를 설명해 주었다. 맘에 드는 문장들은 많지만, 마르쿠스,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몽테뉴만 남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서는 침대에서 나오는 법을 배운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 한다는 다짐. 그리고도 또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헬스장에 가거나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명감도 반복이 필요하다는 정의가 새로웠다. 역시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크라테스에게는 궁금해하는 법을 배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궁금해하는 능력은 기술이며 모두가 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그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이 궁금해하는 마음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소크라테스의 궁금해하는 법은 많이 끌리기도 했지만, 대상을 지극히 많이도 귀찮고 화나게 할 만큼 집요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정도는 자신이 없다. 진심 궁금함의 끝까지 가는 지극함, 그 끝에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나도 한번 들어 보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기 정신에서 현실을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그의 생각이고 우리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완전 동의한다. 염세 주의자인 쇼펜하우어가 사랑한 푸들, 아트만(산스크리트어로 자아라는 뜻)을 꾸짖을 때, ”이봐요, 선생님! “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너무 기억하고 싶다.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드는 순간, 나도 그렇게 사랑을 담아 “이봐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아이의 마음이 나를 향해 열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가 아들을 기업의 후계자로 키우며 국제적인 느낌을 풍기는 “아르투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제 길거리 호텔 앞에 붙은 아루투르를 보면 쇼펜하우어가 생각난다.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어렵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내게 스며드는 순간, 문득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가 다시 잠에 취했다가 한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다시 읽어야만 하는 철학이야기다.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 이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려면 말이다.
홍현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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