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⑫] 비루한 사내의 순정에 던져진 러브레터 ‘파이란’

[2012-03-16, 23:39:29] 상하이저널
파이란 <白蘭, failan>
•장르: 멜로/애정/로맨스/2001
•감독: 송해성
•출연: 최민식(강재), 장백지(파이란), 공형진(경수)
 

# 강재의 프롤로그 #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스스로를 강재씨~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호구, 양아치, 인간쓰레기라고도 불린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 말고는 그가 꿈꾸는 고향은 다시 갈수 없을 것 같은 강재씨의 인생. 소변 통으로 사용하는 개수대에서 밥을 해먹고 사는 비루한 강재씨의 하루살이. 3류 양아치로 전전하던 강재(최민식). 작은 비디오가게를 보며 불법 테이프를 유통시키다가 구류를 살고 친구 용식의 조직에서도 인간대접 못받는 나이트 삐끼 인생이 강재다.


마흔 살의 동네 양아치 강재는 건달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고 허풍으로 하루를 견디는 인생이다. 그래도 고향에 배 한 척 사 가지고 돌아갈 갈 꿈을 갖고 사는데 그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되고 결국 자신의 꿈인 배 한 척과 남겨진 인생의 전부를 맞바꿀 생각을 한다. 그런 그에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인생’도 따뜻한 고마움, 미안함,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한 통의 편지 속에서 발견하고 그는 푸른 바다 위의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영화 속에서 파이란과 강재씨는 단 한 번도 눈길을 마주하지 못한다. 영화 포스터 속에 웃고 있는 모습은 파이란과 강재씨의 소망일뿐. 잠깐 파이란이 그를 찾아와 경찰서에 끌려가는 강재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강재씨는 바싹 말라버린 자신의 영혼을 마주하듯 죽은 파이란을 바라본다. 그리고 강재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잊고 지내던 깨달음을 얻게 한다.

# 파이란의 에필로그 #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유언으로 이모를 찾아 온 한국. 그러나 이모가족은 캐나다로 떠난 지 오래고 파이란(白蘭)은 홀로 남겨져 불법체류자가 될 위기에 있다. 불법체류를 막기 위해 위장 결혼한 강재라는 남자. 삼류 양아치건달이라고 불리기엔 어딘가 어설픈 그가 던져준 붉은 스카프를 품고 고단한 세탁소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파이란. 불법체류자를 찾기 위해 나온 경찰에게 자신의 남편이 강재라고 말하고 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의 사진을 마음 한구석에 끼워둔다. 이름뿐인 서류에 올라간 남편 이강재. 파이란(白蘭)의 죽어가는 몸뚱아리는 직업소개소 사장의 발바닥 무좀약 값이 되어야 하고 차갑고 참담한 현실에서 청초하고 향기로운 그리움을 담아 강재에게 써 내려간 한 장의 편지가 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좋아하게 됐습니다’로 시작해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로 끝나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했던 파이란의 그리움은 세상에서 참 맑고 깨끗한 슬픈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한 통의 편지는 영화제목이 ‘파이란’이여야 하는 전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맛있는 영화, 영화 ‘파이란’의 맛을 상하이에서 찾아보자 - 

 

 

연변 식당이 몰려있는 즈텅루 거리, 생각보다 다양한 연변요리는 물론 한국식당도 많다.

Thema 1
강재의 마음을 달래는 파이란의 소박한 밥상

밥 빌어먹고 사는 쓸쓸하고 헛헛한 인생에 뜨거운 밥 한 숟가락과 술 한 잔의 위로는 크다. 떠난 파이란의 인생이 강재 본인을 닮아 고달프고 애잔한 마음을 차가운 강원도 바닷가에서 꾸역꾸역 구겨 넣은 세월을 토해내듯 흐느끼며 먹그림 나비같이 살다간 강재씨.
따뜻한 명태찌개 한 그릇에 술 한 잔 받아 위로를 보내주고 싶어 찾은 작은 밥집이 있다. 가까운 즈텅루에는 연변식 요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파이란이 차려준 밥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비슷한 듯 다른 맛, 가까운 듯 먼 마음의 거리를 한달음에 좁혀 줄 따뜻한 연변 요리를 소개한다.

 밑반찬도, 부추전도 우리네의 맛과는 조금씩 다르지만 친숙하게 느껴진다.

▶연변식 명태찌개(延边辣明太鱼汤/25元)
한국식 칼칼한 맛과는 다르다. 꾸덕꾸덕 말린 명태를 작게 잘라 끓인 모양이 낯설지만, 맛은 청양고추보다 10배는 맵다는 중국의 작은 고추로 컬컬하게 시원한 맛을 냈다. 꽃샘추위로 걸걸한 입맛에 한두 숟가락 뜨다보니 은근 밥도둑.
 

 말린명태로 끓인 컬컬한 맛의 찌개

▶연변식 명태볶음(延边煎炸明太鱼/35元)
양념 맛이 독특하다. 분명 명태볶음인데 동남아풍의 양념 맛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잘 배인 양념 맛도, 잘 말린 명태 생선살도 모두 맛나다.

 밥 한공기가 부족할 정도로 색다른 맛

▶연변식 오징어순대(延边鱿鱼米肠/40元)
주문해서 기다리는 데만 50분이 걸렸다. 나온 요리는 50분을 기다릴 만 했다. 부드러운 오징어 살도 맛나고 이국적 향이 가미된 찰밥도 부드럽고 풍미가 있다.

 북한 오징어순대보다 향과 맛이 깊다.

•즈텅루(紫藤路) 267호 화룡명태집(和龙明太屋)
•021)3431 6490

맛있는 영화 속 맛있는 Tip

                                         명주실에 매달린 명태사진

▶영양이 많은 명태는 왜 명태로 불리게 되었나?
해독작용과 눈을 맑게 하고 다양한 영양소는 물론 노화방지에도 좋은 명태.
조선 중기까지는 강원도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명태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 없는 물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조선조 중엽,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한 민 아무개가 순시 차 명천군을 방문했을 때, 어찌나 시장했던지 식탁에 오른 생선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물고기 이름을 물으니 그 때까지 아무도 그 고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즉석에서 명천군의 ‘명’자와 어부 태 씨의 ‘태’자를 따서 ‘명태’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이 때 부터 명태는 우리 민족이 가장 즐기는 생선이 된 것이다. 명태는 잡는 방법에 따라 추태, 동태, 망태, 조태, 강태로도 불린다. 명태는 우리나라의 흔한 어류의 대표가 되었고 이사를 한집에 장수를 의미하는 명주실에 걸어 둘만큼 친근한 토테미즘 (특정종류의 동식물이나 광물, 천연현상 등의 사물에 대해 개인과 집단이 특수한 종교적 태도)이 되었다.

Thema 2
파이란이 그리워한 고향 연변의 맛

파이란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사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연변출생으로 나온다. 그 흔한 차 한 잔 마시는 장면, 밥 한 번 먹는 장면 없이 인간세탁기라 불리며 일을 하고 잠을 자고 강재씨에게 편지를 쓰던 막막하고 고달픈 파이란의 하루살이. 빨래 바구니를 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파이란을 불러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말아주고 싶었다. 우리 입맛에도 낯설지 않은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연변 요리를 소개한다.

▶냉면과 온면으로 즐길 수 있다
연변식 솔화분 고급냉면(延边松花粉高级冷面/38元)

 

종류도 다양한 연변의 냉면. 깔끔하고 깊은 육수가 냉면 온면 모두 맛있다. 그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맛을 보여주는 솔화분 고급냉면. 커다란 그릇에 나오는 양은 어른 둘이 나눠먹기에도 충분할 정도. 냉면 옆에 담겨 나오는 진짜 겨울 김치도 일품. 집에서 담갔다는 시원하고 개운한 맛의 김치는 이제 막 겨울 장독대에서 꺼내 온 바로 그 맛. 냉면 역시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순하고 착한 맛이다.

▶그래, 이 맛이야
연변식 옥수수온면(延边玉米温面/대20元/소15元)

부드럽고 고소한 면발이 일품인 옥수수 온면. 따뜻하고 편안한 맛의 육수, 두 개나 올려 진 삶은 계란에 인정이 넘친다.

시원하고 아삭한 겨울김치가 냉면, 온면과 잘 어울린다.

▶꽃샘추위도 훅 달아오르게 하는
연변식 소양매운무침(延边火辣拌牛肚领/35元
)

소위의 가장 윗부분으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 연변의 유명한 술인, 독한 고려춘사성 한잔에 딱 어울리는 맛이다. 비루하고 고달팠던 강재와 파이란도 독한 술 한 잔에, 얼얼하게 매운 안주 한입에 지난 시간은 잊고 이제 그들만의 세계에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길.

▶개운하고 새콤하게 입맛을 돋우는
연변식 두부피무침(延边黄瓜拌干豆腐/20元)

연변요리의 에피타이저라고 할까? 쫄깃한 두부피와 각종 채소를 채 썰어 새콤달콤하게 무쳤다. 추위에 지치고 노곤했던 입맛이 확 돈다. 캬~ 이런 맛에 시원한 맥주가 빠질 수가 없다. 밥반찬이기보다 맥주 안주로 더 잘 어울리는 연변식 채소무침이다.

•칭산루(青衫路) 369호 연변진달래냉면(延边金达莱冷面)
•021)3431 1679

<맛있는 영화평>
서혜정


상하이에서 만난 아사다지로의 소설, 영화 파이란, 연변요리가 주는 새로운 감성. 여기 상하이 사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지 싶다.

박윤희
 
친숙한 듯 생소하게 매운맛을 내고, 같은 듯 다르게 국물 맛을 낸 연변요리! 깔끔한 듯 진하게 맛을 낸 그 요리를 다시금 찾고 싶다.

김나래
 
요리이름으로 상상했던 것과 다른 정말 색다른 맛과 모양! 가까우면서도 먼 연변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알았던 친숙함이 맛으로도 느껴진다.

▷서혜정(프리랜서 기고가 fish71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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